대장 마을 앞 종점 수퍼에는 늘 엿장수들로 붐비었다. 부천 전역에서 온 엿장수들의 쉼터이자 오쇠리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고물이 거래되는 곳이었다.
 

대장 마을 초입에 있는 종점 슈퍼 <한도훈>

 
미군 부대에선 늘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철캔이나 알루미늄부터 철제 고물, 의류들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멀쩡한 옷들도 나왔고 아예 새옷들도 나왔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나왔고, 미군 PX를 통해서도 나왔다.
 
이런 물건들을 받아다 넘기거나 부천 전역을 돌면서 걷어온 고물들이 거래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늘 엿장수들로 가득 찼다.

이 엿장수들이 종점 슈퍼 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었다. 대장 마을 어르신들에 의하면 이틀에 한 마리 꼴로 돼지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엿장수들이 붐비었다. 이곳에서 돈도 많이 벌어 집도 사고 논도 사고 그랬다는 것이다.
 
육십 년대. 칠십 년대에는 엿장수들이 참 많았다.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엿장수가 연출해내는 엿단쇠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들었다. 엿장수들은 자기들 맘대로 엿가위인 엿단쇠를 쩔겅쩔겅 부딪히며 엿사라고 소리를 쳤다. 아니 소리치지 않아도 엿단쇠 소리를 알아듣고 다들 집으로 뛰어 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고무신이며 찌그러진 냄비 따위를 들고 나왔다. 할머니들이 머리를 빗으며 떨어진 머리카락도 엿장수는 받았다. 정성스레 싸놓은 머리카락도 엄마 몰래 가지고 나와 엿가락과 바꿔 먹었다. 원래 할머니들이 손주들 주려고 모아놓은 머리카락이어서 미련은 없었다.

“자, 엿이 왔어요. 엿들 사려! 둘이 먹다 혼자 죽어도 모르는 찹쌀엿이 왔어요! 자 귀투이가 떨어진 신발이나 찌그러진 냄비, 빈 병 있으면 갖고 오시오! 쌀, 보리, 콩, 팥, 수수도 받습니다. 신랑 각시 첫날밤에 오줌 누다가 빵꾸 난 놋요강도 받습니다!”

진도 지방에선 엿장수들이 엿타령을 부르면서 손님들을 유혹했다. 그 엿타령을 들으며 입속으로 녹아드는 엿맛은 기가 막혔다. 

특별한 군것질이 없던 시절인 육십 년대, 칠십 년대엔 엿장수를 기다리는 것이 크나큰 일과였다. 온동네를 쏘다니며 놀다가도 엿장수가 왔다는 소리만 들으면 엿장수가 끌고 다니는 리어커 주위로 모여들었다.

엿장수 리어커 안에 별의별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가끔 가다 주인없는 물건들은 슬쩍 리어커 안으로 던져 넣기고 하고, 쓸만한 물건을 가져왔을 때는 모른 척 눈감고 던져 넣기도 했다. 양심이 있는 엿장수들은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엿 한가락 쯤 공짜로 주기도 했다. 
그게 다 엿장수 맘이었다. 엿장수가 맘 먹기에 따라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거나 그저 아이들에게 잔도둑질을 하라고 부추기는 그런 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엿장수들이 하루 열심히 엿을 팔아 번 돈으로 생활비로 쓰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고물을 100% 재활용해서 쓰던 시대였다. 굳이 재활용을 설파하지 않아도 머리카락까지 재활용해서 훌륭한 가발로 탄생했다. 그게 수출역군이어서 너도 나도 가발 원료인 머리카락 확보에 나서게 되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부천에는 가발 공장이 여러 개 있어서 특히 더했다. 경인국도 변의 삼정 공단, 도당 공단 내에 가발 공장이 있었다. 머리를 길게 기른 여자들은 머리카락 자체가 아이들의 엿값을 톡톡히 해주는 보물 같은 것이었다. 

대장 마을이 한 때 엿장수로 들썩인 것은 이런 시절하고 맞물려 있었다. 엿장수로 대변되는 재활용 시대! 난지도 쓰레기장에서 수많은 물건들을 고르고 고르던 넝마주이 벌이가 괜찮던 시절이었다. 

어지간히 먹고 살만한 집안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찹쌀이나 멥쌀로 엿을 고았다. 엿을 곤날은 동네 잔치날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엿을 고아서 설날이면 아이들에게 세뱃돈 대신 엿 한 조각씩을 선물로 내놓았다.
 
대장 들판에서 수확한 쌀을 물에 불려서 찐 다음에 엿기름 가루를 넣고 가열하였다. 다시 체로 걸러내고 열을 가하면 물엿이 되었다. 시중에서 파는 물엿이 바로 이 단계의 엿이다. 이 물엿은 바로 설날에 떡을 찍어먹던 조청이다. 이 조청을 더 가열하면 붉은 색깔의 덩어리 엿이 되었다. 이것을 지방에 따라 강엿, 갱엿, 혹은 개엿이라 불렀다.


 

한도훈

한도훈 1961년 전남 나주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역사, 문학 등을 좋아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문학인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 왔다.
부천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89년도이다. 이때부터 책사랑 도서실 운영, 부천시민신문 기자, 부천실업학교 국어교사, 부천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부천문화원 백일장 심사위원장,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부천이뉴스, 미추홀신문, 월간 사람과 사람들에서 편집인, 편집국장으로 일을 했다.
부천문화원 향토사 체험학습 강사를 하면서 부천지역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부천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부천역사문화 해설사 과정에서 강사로 참여했고, 부천시 향토역사퀴즈왕 선발대회 총괄 주관을 맡기도 했다.
콩나물신문사 편집위원장으로 ‘내고향 부천이야기’ 연재를 했으며, 부천향토연구회 콩시루에서 부천역사 해설사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인천작가회의 회원, 시와문화 작가회 회원,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 역사문화 관련 집필로는 ‘부천시사 땅이름 분야 집필’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 ‘신나게 부천을 배우자’ ‘장말도당굿’ ‘부천역사문화투어’ ‘고리울 가는 길’ ‘대장 마을 가는 길’ ‘대장 마을 사진집’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벌거벗은 신들의 세상1, 2’가 있으며 동화로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소라의 용못’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오늘, 악어떼가 자살을 했다’ ‘홍시’ ‘코피의 향기’가 있다. 시와문화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