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량리가 강상골인지, 고리울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고강동 지역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현재의 고리울, 장갯말이라고 여겨지는 간데미 지역에 모여 있는 집들이 1433년도 그 당시에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가장 확실하게 확인되는 것은 흑량리뿐이다.

흑량리(黑梁里)가 고리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고리울로 불리는 고리동(古里洞)도 나중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선후의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이 땅이름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 흑량리에 대한 분석 여하에 따라 마을에 붙인 그 뜻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흑량리(黑梁里)는 한자 그대로 해설하면 ‘검은다리나 검은들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 된다. 마을로 들어오는 곳에 검은다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검은들보를 닮은 마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흑량리를 해석하면 우습게 되어 버린다. 검은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검은들보를 닮은 마을이라? 흑량리는 전국에서 부천 딱 한군데만 있기에 그렇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검을 흑(黑)을 ‘땅이 검다’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검은 땅이라? 다리 량(梁)은 ᄃᆞᄅᆞ/ᄃᆞᆯ로 읽힌다. ᄃᆞᄅᆞ는 들판을 이야기한다. ᄃᆞᆯ은 산이나 높은 곳을 가리킨다. 곰달리에서 ‘달’하고 그 의미가 같다. 오쇠리의 꽃다리도 같은 뜻이다.

먼저 검은들로 읽어보면 공장공 변종인이 산 마을앞이 검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 이 검은들이 오정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토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해서 ‘흙이 검은 들판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다. 부천에서 토탄은 주로 ‘대장마을, 섬말, 긴등마을, 꽃다리’ 사람들이 땔감이 없을 때 캐서 사용하던 오곡습지 부근에서 주로 나왔다.
 
토탄이 아닌 검은흙이 들판에 자리잡은 마을은 부천에서 어디에 있을까? 대장 마을일까? 오정마을일까? 시우물일까? 장말일까? 그렇게 보면 이들 마을들은 개흙이 마을 앞에 있어서 ‘흙이 검은 들판이 자리잡은 마을’일 수 있겠다. 과연 그런가? 부평(富平) 흑량리(黑梁里)라고 표현했으니 현재의 강상골이 아니고 부평의 어느 마을을 지칭하는 것일까?

흑량리는 공장공 변종인이 직접 살았던 강상골인 장장골 마을을 구체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옳은 것이 아닐까?   
밀양변씨 세족들이 면면이 이어온 강상골은 붉은 황토흙이 차지하고 있다. 밀양변씨 조상 묘역이 있는 능골산이나 대머리산에 가보면 온통 붉은 황토흙이다. 고리울내를 중심으로 논바닥이야 개흙이지만... 강상골 건너편인 고리울, 장개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간데미도 붉은 황토흙이다.
 

밀양변씨 재실 출입문인 흑량문(黑梁門) <한도훈>

 변종인 당시에는 논 보다는 밭이 더 많던 시절이라 붉은 황토흙이 일상이었을 터인데... 개흙이나 토탄을 지칭하는 마을이라고 여겼을까?

흑량리에서 ‘검을 흑(黑)’을 뜻을 빌려 우리말로 표기하는 훈차(訓借)를 하면 ‘검’ 된다. 이 검의 어원은 ‘ᄀᆞᆷ’이다. 이 ᄀᆞᆷ은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땅이름들의 의미를 밝히면서 새롭게 조명된 중요 요소(要所)가 되었다.

ᄀᆞᆷ은 ‘크다, 신성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왕호나 땅이름, 일반 용어에도 쓰일 정도로 광범위하다. 

가마골, 가마뫼, 가마섬, 가막다리, 가막뫼, 가막섬, 가매섬, 감개, 감골, 감내, 감도, 감돈, 감뫼, 감물, 감소, 감실, 감아재, 감은들, 거무개, 감재, 검나리, 검나루, 검내, 검달, 검뫼, 검흘, 고마섬, 고모, 곰개, 곰골, 곰나루, 곰내, 곰달, 곰말, 곰못, 곰바다, 곰섬, 곰소, 곰실, 곰재, 공골, 구무섬, 굼들, 굼부리, 금나리, 금마, 금마을 등이 있다.

이같은 땅이름들이 모두 ‘ᄀᆞᆷ’ 계열이다. 이 ᄀᆞᆷ 계열 땅이름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뜻을 갖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크다, 넓다’는 의미만 갖고 있고, 어떤 곳에서는 크다는 의미 외에 ‘신성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지역이나 산수, 역사 등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왕호는 아닐지라도 족장의 의미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다리 량(梁)의 어원은 ‘ᄃᆞᆯ’이다. 이 말은 달, 들, 돌로 변해서 산을 표현할 때 주로 썼다. 그러니까 산의 옛말은 ‘ᄃᆞᆯ ᄃᆞᆮ’이었다. 이 말을 어원으로 해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자로는 주로 ‘월(月), 달(達)’로 쓴다. 제일 많이 쓰이는 말은 ‘산’이라는 뜻이다. 그 다음이 ‘들’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다리 량(梁)도 쓴다. 그럼 ᄃᆞᆯ은 뭔가? 산의 옛말로 읽힌다. 태백산을 한박달이라고 하고, 작은 산이라는 뜻인 아사달이 있다.

봉배산의 청동기유적지 제단인 적석환구유구처럼 고대의 제단은 산꼭대기에 있어 ‘달’은 ‘단’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다라래, 다라리, 다라실, 다랭이, 다롱이, 다리골, 다랫골, 대룻골, 닥골, 닥실, 딱골, 닭굴, 다악굴, 닥개, 때깨, 닥고개, 당고개, 땅고개, 땅재, 닥내, 닭내, 당내, 닥머리, 닭머리, 당머리, 닥말, 닥몰, 당머리, 당뫼, 땅골, 닥밑, 당밑, 댕밑, 닥섬, 닭섬, 딱섬, 닥실, 닭실, 닫들, 단다리, 단더리, 닫골, 다부냇골, 달골, 다리골, 닥재, 닭재, 달구재, 달개, 다리개, 달고개, 돌고개, 달내, 달나부리, 달낫재, 달들, 다랫들, 다랫굴, 다락밭, 다락굴, 달락굴, 다랑골, 다랭굴, 다래기, 달롱개, 달마니, 달못, 달목, 달리목, 달뫼, 달메, 달산, 달머리, 달바위, 독바위, 달밭, 달앗, 닭밭, 닥밭, 딱밭, 돌밭, 달아래, 다라리, 달아실, 달애골, 다랫골, 달아실, 달실, 다리골, 땅골, 달안, 달한, 달으재, 달재, 달쟁이, 달배미, 달팽이 등이다.

참으로 많다. 이 땅이름들이 산하고 연관이 있다. 물론 이 ᄃᆞᆯ을 한자로 옮기면서 ‘달 월(月), 통달한 달 (達), 닭 계(鷄), 집 당(堂), 많을 다(多), 닥나무 저(楮). 돌 석(石), 붉을 단(丹), 홀로 독(獨), 다리 량(梁), 다리 교(橋)’ 등으로 쓰였다. 물론 ᄃᆞᆯ이 들판을 쓸 때도 있다. 그렇지만 산만큼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흑량리(黑梁里)는 ‘검달리’가 된다. ‘ᄀᆞᆷ, 감, 검, 곰’의 의미로 쓰인 ‘고음달리(古音達里), 곰달리’하고 똑같다. 마을 이름은 곰달리로 해야 한다. 고리울의 원형이기도 하다.

물론 신월동에 고음달리 마을이 있지만 예전에는 하나의 마을로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흑량리가 곰달리로 해석되는데, 그 위치를 신월동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공장공 변종인의 출생지가 신월동 고음달리로 정해지면 강장골인 강상골을 부정해버리는 셈이 된다. 그러기에 강상골 이전의 마을 이름은 곰달리, 고음달리 즉, 흑량리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봉배산이 ‘족장의 이름이 면면히 살아 숨 쉬는 신성한 산’이라는 ‘곰달’이라는 명칭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봉배산에서 청동기유적지를 발굴해서 곰달을 갖다 붙인 것이 아니라 곰달은 원래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살아있는 땅이름의 역사였다. 그 역사가 청동기유적지 발굴을 통해 입증이 된 것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최근까지도 강상골, 고리울, 장개말 사람들은 봉배산에 청동기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 곰달이라는 땅이름을 전해주고 전해 받은 것이다. 
사람들이 땔나무를 하기위해 산을 오르면서 그 이름을 입속에서 뇌이고, 함께 간 자식들에게 반복해서 전수해 주어 후손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한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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