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쏙 빼놓고?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많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TV, DVD,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매체인 만큼 우리에게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우리의 삶을 반영함으로써 관객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 과연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어떤 영화가 남성중심적 영화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벡델 테스트와 포스터 테스트를 참고하면 된다. 먼저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이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 대화 내용은 남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이 조건들을 보았을 때 테스트를 통과하기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9년 2월 18일 영화진흥위원회(www.kofic.or.kr)의 ‘2018 한국 영화 산업 결산’에 따르면 2018년 개봉한, 순 제작비 30억 원 이상인 실사 한국 영화 39편 중 <국가부도의 날>, <도어락>, <마녀>, <상류사회>, <스윙키즈>, <완벽한 타인>, <인랑>, <치즈인더트랩>, <허스토리>, <협상> 의 10편만이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벡델 테스트에도 한계는 있다. 배우 산드라 블록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그래비티>의 경우 여성 주인공 하나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영화라 다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영화가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을지라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장면이 나온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 스틸 이미지 <이미지=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2018년 벡델 테스트뿐만 아니라 여성 배우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시험인 ‘포스터 테스트’도 실시했다고 한다. ​

포스터 테스트는 여성 주연이 영화를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시도한 시험이다.

포스터 테스트의 질문은 ‘포스터에 남성과 여성이 몇 명 등장하는지’, ‘포스터 속 인물의 크기와 배치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포스터 안에 아예 여성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39편 중 20편이나 된다고 한다.

포스터에 여성이 나오긴 하지만, 남성과 비교해 작은 크기로 후방에 배치되어있거나 여성 1인, 남성 다수로 이루어져 있는 포스터까지 합친다면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포스터는 모두 27편이다. 대략 70%가 여성 인물은 배제한 남성들의 이야기로만 구성된 영화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여성 인물의 이야기는 남성 인물의 이야기에 묻혀 사라진다.  
 

영화 '나쁜 녀석들 : 더 무비' 스틸 이미지 <이미지=네이버 영화 스틸컷>

또한 AI가 영화를 분석한 사례도 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팀이 실행한 이 시험은 감정적 다양성, 공간적 역동성, 공간적 점유도, 시간적 점유도, 평균 연령, 지적 이미지, 외양 강조도,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 총 8가지 분석 지표로 성별을 묘사하는 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한다.

이 8가지 분석 지표를 바탕으로 40편의 영화를 분석했을 때 여성 인물은 슬픔, 공포 등의 감정, 남성은 분노와 같은 감정이 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인물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은 남성 인물에 비하여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탐정 : 더 비기닝' 스틸 이미지 <이미지=네이버 영화 스틸컷>

인물들의 나이를 측정했을 때, 여성 인물의 평균 연령이 남성 인물의 평균 연령에 비해 약 79% 낮게 측정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한국 영화에서 빈번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분석했을 때, 여성 인물과 자동차가 동시에 등장하는 비율은 남성 인물에 비하여 55.7% 밖에 되지 않았고, 여성 인물이 가구와 동시에 등장하는 비율이 남성 인물에 비하여 123.9%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안경을 쓴 캐릭터’는 전문성을 갖추는, 지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속 여성은 안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안경을 쓴 남성이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정리해보면 영화에서 비춰지는 여성의 모습은 슬픔, 공포 등의 수동적 감정을 주로 느끼고, 남성 인물보다 나이가 어리며, 가구와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즉 집 안에서의 활동이 많은 모습이다.

남성은 분노와 같은 능동적 감정을 주로 느끼고, 여성 인물보다 나이가 많으며, 여성에 비해 가구와 출연하는 빈도는 적고 자동차와 동시에 출연하는 빈도는 많기에 밖에서 활동이 많은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안경을 쓰는 남성 인물이 여성에 비해 많은 것으로 보아 영화 속에서 지적이고 전문적인 인물은 주로 남성이 맡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영화 속에는 많은 성별 고정관념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영화에 성별 고정관념적인 묘사가 있다면, 영화를 볼 때마다 우리는 성별 고정관념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우리 또한 영향을 받아 성별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

만약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 영향으로 우리의 현실에서도 그런 고정관념이 깨질 수 있다.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 스틸 이미지 <이미지=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 예로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들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 양궁 수업을 듣는 념 여자아이 비율이 105%나 급증하였다고 한다.

기존에 공주가 나오는 영화들의 성별 고정관념 클리셰를 깨부수고, 스스로 해내는 활동적인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의 고정관념도 깨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는 현실에서도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성평등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영화를 보는 소비자의 입장으로서 남성중심적인, 남성 인물이 다 해 먹는 영화보다 모든 성별이 평등하게 등장하는, 성별 묘사에 고정관념이 없는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비한다면 현실에서의 성 고정관념도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글=청소년기자단 박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