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제1장 조선의 여성 성리학자 윤지당 임씨
지금 그의 이야기를 펼쳐보자.
조선 시대는 지금보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 심했다. 그 탓에 아무리 뛰어난 학식을 갖추어도 여성은 과거를 볼 수 없었으며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성리학 연구에 몰두한 여성학자가 있었다. 바로 윤지당 임씨이다.
윤지당은 호이고 성은 임씨이지만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성리학 연구에 힘을 써왔는데, 그 중 윤지당 임씨의 오빠 임성주는 조선 성리학 6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힐 만큼 학문이 뛰어났다. 윤지당은 어릴 때부터 오빠인 임성주로부터 <효경>, <열녀전>, <소학> 등을 배웠다.
18살에 시집을 갔으나 결혼하고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윤지당은 집안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집안을 돌보고 밤에는 소리를 낮추어 책을 읽으며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조선 시대는 지금보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 심했다. 그 탓에 아무리 뛰어난 학식을 갖추어도 여성은 과거를 볼 수 없었으며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성리학 연구에 몰두한 여성학자가 있었다. 바로 윤지당 임씨이다.
윤지당은 호이고 성은 임씨이지만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성리학 연구에 힘을 써왔는데, 그 중 윤지당 임씨의 오빠 임성주는 조선 성리학 6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힐 만큼 학문이 뛰어났다. 윤지당은 어릴 때부터 오빠인 임성주로부터 <효경>, <열녀전>, <소학> 등을 배웠다.
18살에 시집을 갔으나 결혼하고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윤지당은 집안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집안을 돌보고 밤에는 소리를 낮추어 책을 읽으며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남몰래 공부한 탓에 그의 가족들도 그의 학문적 깊이를 알지 못했으나 사후 발견된 윤지당의 글을 보면 성리학과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어서 당시 대학자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쓴 <이기심성설>, <인심도심사단칠정설> 등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발전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또, 안자, 자로, 사마광, 왕안석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세밀한 평가를 남겼다.
윤지당이 남긴 글들은 1796년에 동생과 시동생이 모아 <윤지당유고>로 간행했다.
<글=청소년기자단 김영희 기자>
그가 쓴 <이기심성설>, <인심도심사단칠정설> 등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발전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또, 안자, 자로, 사마광, 왕안석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세밀한 평가를 남겼다.
윤지당이 남긴 글들은 1796년에 동생과 시동생이 모아 <윤지당유고>로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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