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그곳에서 평안하시지요?
우리는 3년이나 지속된 코로나 병마와 맞서 살얼음걷듯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보살펴주신 탓에 올 한 해도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합니다.

두 분은 일제와 6.25 전쟁을 겪으며 나라의 큰 도움없이 4남매를 지켜내시고, 전쟁후 3형제를 보태 모두 7남매를 키우셨습니다.
그 7남매를 하루하루 부양하며 얼마나 많은 밤을 고심하며 보냈을지를 생각하면 존경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건강 검진 결과가 통보되었습니다. 제 나이때면 절반 가까이 고혈압, 고지혈증 등에 시달린다고 하네요. 저는 다행히 건강한 절반에 들었습니다. 나이 탓에 몸이 많이 무거워졌으나, 날마다 농장에 나가 움직이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건강한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 덕분입니다.

최근 들어 시력이 많이 떨어졌으나, 내년 1월 언저리에 날짜를 잡아 수술하려고 합니다. 수술 경험자 말에 따르면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밝아진다니, 몇 달 몇 년을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서 이또한 고마운 일이지요.

저는 은퇴랍시고 두 내외만 남아 평온하게 여생을 보냅니다. 그러나 두 분은 지금 제 나이 훨씬 이후에도 막내 또는 손주들을 뒷바라지하시려고 생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돌이켜보니 칠순이 훨씬 지난 아버님이 부천에 오시면서 비로소 두 분이 치열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철철이 평생 지내던 제사까지 없애셨습니다.
부모 자식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각자 독립된 주체로 살라는 선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10년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1900으로 시작하던 우리들 생일이 이제는 2000으로 시작하는 생일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벌써 23년을 맞이합니다. 2023년 내년에는 어떤 희로애락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언젠가 "우리가 겪은 풍파를 생각한다면, 너희들이 '죽겠다, 힘들다'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라는 말씀해주셨죠.
그 교훈대로 적당한 시련과 아픔도 그걸 감당한 뒤에는 보람이며 기쁨이고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두 분을 지켜본 손주들 세대도 충분히 그 뜻을 헤아려 열심히 살고 있으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나중에라도 또다른 인연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에는 제가 부모가 되고 두 분은 제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Tag

#이음플러스뉴스 #한효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