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 따분해, 그저그래. 자극이 없어."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하면, 지나가는 귀신이 들을까봐 그 사람 입단속을 합니다.

"쉿, 그런 소리하지마. 지금이야말로 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날이라구.
귀신이 시기하여 니 가족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면, 돈을 떼이게 한다면, 가족이 엉뚱한 짓을 하게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한다면...
그때부터는 니가 심심할 일이 없을 거야."

옛말에 "건강을 잃어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어요. 또 "살만 하니까 죽는다"고도 했지요. 잘 살려고 죽어라 열심히 살았는데, 그 목적을 이루니 죽을 일밖에 남지 않았던 겁니다.
집안과 나라가 조용하고, 심심하고, 따분하다면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선진국을 따지는 기준으로 소음 지수를 집어넣어도 좋을 겁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느 특정한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회가 선진국이라는..

그래도 심심하면 번지 점프를 하든지, 관광지 집라인을 타세요. 그런 극한 스포츠나 모험은 심심한 사람을 위해 탄생했을 겁니다. 또 맛집을 찾아다니고, 제주도 한달 살이를 해보면서 소확행을 즐기시구요.

한국 드라마 시청도 권할 만합니다. 한국 드라마는 등장인물 심리 묘사가 섬세하여 순간순간 시청자를 등장인물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뻔한 서사 구조를 보면서도 "저 죽일 놈"하고 욕하며 들여다 봅니다. 더구나 손에 땀나는 순간에 1회를 마무리하고 다음 편을 예고하면서 사람 애간장을 태웁니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얄밉지요?
"과연~ 오늘에~ 1등은~ 결과는~"하다가
"광고 후에 뵙겠습니다."하며 사람 맘을 애타게 하지요.

이런 끝내기 방법을 "클리프 행잉(cliff hanging)"이라고 한답니다. 사람 손에 땀나게 하는 장면으로 끝내는 건데요. 사람이 절벽(클리프)에 매달린(행잉) 장면에서 마무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번 "오징어게임"을 보던 외국인들이 가장 겪하게 반응했던 것이 매 회 마지막을 끝낼 때였습니다.
"이렇게 끝낸다고?"

예를 들어 줄다리기할 때 이정재 팀이 끌려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죠. 다음 회를 안 볼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1주일 한 회, 두 회를 기다리지 않고 요즘에는 시즌이 다 끝나면 주말에 7~8회 한꺼번에 몰아보기가 유행이라고 해요. 조마조마한 마음을 풀어가며 즐기는 겁니다.

그래도 심심하면 어떡하죠?
그래요? 그동안 한국에 계속 사셨다면 심심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며 생각지도 않은 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어요?

2017년에는 최고 권력자를 무혈로 끌어내린 짜릿한 경험도 했구요.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깜냥이 많이 부족한 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어요.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죽어나가는데, 우리는 새 대통령 용산 집무실 논란으로 순식간에 지난 한 달을 보냈어요. 아마 앞으로 심심할 새가 없으실 겁니다.

홍콩, 미얀마는 그들이 겪는 험한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 투쟁 과정을 교과서로 삼는다고 하더군요. 2차대전후 해방된 신생국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신기한 것이겠죠. 물론 이승만을 몰아내고 박정희, 전두환을 겪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파란만장하게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은 이런 과정을 창조적으로 치르면서 5년 뒤, 10년 뒤에는 다른 나라에게 민주주의는 이렇게 완성해가는 것이라며 새 길을 보여줄 겁니다.

그래서 한국은 양성이 서로 존경하고, 사회적 약자를 좀더 배려하고, 외국인을 인간으로 대접하고, 빈부 격차가 줄고,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는 나라가 될 겁니다. 정말 심심하면서도 소음이 낮아지는 사회가 될 겁니다.
클리프 행잉을 즐기는 한국인, 당신들은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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