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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보이차에서 채엽 시기를 나타내는 명전[明前]은 청명 이전에 딴 찻잎으로 가공한 ‘첫물차’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 찻잎의 등급(크기)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아열대 기후인 운남의 차산 지역에서는 청명이면 이미 일아이엽[一芽二葉] 또는 일아삼엽의 찻잎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녹차만을 마시다 보이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보이차에 채용된 찻잎의 크기는 가히 충격적이지요.
”헉! 이 긴 줄기는 뭐지? 이 잔가지는 또 뭐야?“
이러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핵심은 바로 보이차의 ‘병배’라는 것입니다. 보이차의 맛을 창조해 내는 일종의 레시피라고 할 수 있지요.
녹차는 단일한 등급의 차청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단일한 맛을 즐길 수 있는데 비해 보이차는 여러 등급의 찻잎을 병배 해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즐길 수 있게 제작이 되는 것이지요.
참고로, 보이차에 채용되는 찻잎의 등급은 크기에 따라 특급, 1급~10급 등 총 11개의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이 각기 다른 맛과 향을 가진 다양한 등급의 찻잎을 병배해 승화된 맛을 창조하는 겁니다.
예컨대, 맹해차창의 생차를 대표하는 숫자 보이차인 <7542>의 경우 전체 등급을 고루 병배하되, 특별히 4등급의 병배 비율을 높여 제작함으로써 개성 있는 맛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지요.
정리해 보면 보이차는 다양한 등급을 가진 찻잎들의 조화와 융합을 통해 승화된 맛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어울림의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울림은 단순한 물리적 어울림을 넘어 화학적 어울림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보이차를 차를 만들 때는 찻잎만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줄기째 함께 사용해 긴압을 합니다. 병면을 보면 다양한 등급의 모차를 채용해서 만든 병배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보이차를 우리고 난 엽저(찻잎 찌꺼기)를 자세히 보시면 좌측의 아[芽]에서부터 우측의 큰 잎들까지 다양한 등급의 병배가 한눈에 잘 드러납니다. 이 다양성의 조화가 보이차를 우뚝 서게 하는 특징인 것입니다.
<2005창태집단茶中王茶君臨天下御品>을 마시면서 새삼 다양성의 힘을 절감합니다. '조화와 융합의 차' 보이차 한 잔의 행간에서 '역사 발전의 변증법'을 읽습니다. 지나친 순혈주의와 쇼비니즘은 문화의 다양성과 역사 발전을 위해 자제하고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여린 싹에서부터 큰 잎뿐 아니라 줄기에서 잔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등급의 찻잎들이 이루어 내는 하모니가 보이차를 웰빙 시대의 화두 王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보이차 속엔 '획일화'와 '통일'을 뛰어넘어 '조화와 융합을 통한 창조'라는 보석처럼 빛나는 원리가 숨 쉬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재질과 색깔 크기 등을 가진 자투리 천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조각보의 예술처럼 말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마시다.”
보이차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제가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일구어낸 문장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제 차실 한쪽에 자리한 진공관 앰프를 통해 재생되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이 AR7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물론 불가능한 전제이지만 이 음악을 하나의 악기만으로 연주한다고 가정하면, 앞서 받은 그 웅장함과 감동이 똑같이 느껴질 수 있을까요?

주전자의 전원을 올리고 보이차 한 잔 우려 보시지요. 여러분들의 입안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감동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한 잔 하시지요.“
오늘도 오케스트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의 정화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김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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